서울 마포구 염리동, 그곳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곳에 한서초등학교가 있다. 지난 1945년 6학급으로 개교한 한서초등학교는 지금까지 2,000여 명의 염리동 아이들이 거쳐 간 유서 있는 학교이다.
한서초등학교는 아현뉴타운 지구 한 가운데 있다. 학교 바로 뒤쪽은 아현동. 지난 겨울 이곳에는 철거 공사가 시작됐고 이제 곧 718세대의 고층 아파트가 세워질 것이다.
철거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문제들
그곳의 철거는 아현동 주민들의 억척스런 삶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재개발 공사는 이제 이웃 동네인 염리동 주민들에게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바로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가 그것이다. 특히 공사 현장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한서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이 문제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소연하는 문제는 소음이다. 다행히 수업시간에는 닫힌 창문 덕에 별 문제가 없지만,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 때에는 포크레인이 땅을 파헤치는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
환경부가 밝힌 <2007년 소음․진동 민원발생 현황>을 보면 전체 민원발생 중 공사장 소음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64.5%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서울시가 34.6%로 가장 많다. 이는 뉴타운을 비롯한 재건축․재개발 등 대규모 개발사업 지역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사실 소음보다 더 큰 문제는 먼지이다. 특히 PM10(1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미세먼지)은 다른 오염 물질과 달리 일단 발생하면 계속해서 체내에 누적되어 허용기준치 이하의 농도에서도 보건적 피해가 발생한다.
국내․외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PM10 농도가 10㎍/㎥증가할 때 전체 사망률은 1~2%, 호흡기계 사망률은 3~6% 증가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특히 호흡기계 질환은 그 특성상 체중이 작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피해를 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호흡기계 질환의 대부분이 10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집중되고 있다.
한편, 서울은 OECD 가입국의 수도 중에서 PM10 농도가 1위인 도시이다. 한국대기환경학회지 제20권에 실린 <우리나라 지역 및 부문별 먼지 배출량>에 따르면 서울에서 발생하는 먼지의 26%는 건설 공사에서 배출된다.
교육청의 탁상행정과 재개발조합의 편법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교육감은 학교가 정비구역에 있거나 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되는 경우에는 학교의 보건·위생·학습환경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학부모, 교직원 및 지역사회 인사 등으로 구성되는 정비구역학습환경보호위원회를 설치·운영하여야 한다.(법 제6조의3) 그리고 공사로 인한 소음·진동·미세먼지·통학로의안전성·일조량 등에 대한 학습환경조사를 실시해야 한다.(시행령 제20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교육청과 서부교육청은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사회당 마포구위원회의 문의 결과 서울시 교육청은 “이 법조항이 2008년 8월 4일부터 시행된 것이어서 지금 준비 중이다”라는 궁색한 답변을 내놨고, 학습환경조사를 담당해야 할 서부교육청은 “민원이 발생할 경우에만 조사한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재개발조합이 순순히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안전 조치를 취할 리는 만무하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르면 비산먼지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시설의 설치 및 조치에 관한 기준으로 공사장 부지 경계선으로부터 50m 이내에 주거, 상가 건물이 있는 경우에는 3m이상의 방진벽을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서초등학교의 경우 그 어떤 곳에도 방진벽은 찾아볼 수 없다. 공사장과 마주한 후문 쪽 일부 구간에만 높이 2m가량의 일반 펜스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그 외 지역은 그냥 천으로 둘러싸여 곳곳이 찢어지거나 건축폐기물이 통학로 쪽으로 침범해 있다. 심지어 통학로가 움푹 꺼진 곳도 있으며, 학교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마저도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다.
이에 대해 재개발조합은 “학교 인접 지역은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에 공사로 인한 문제는 크게 없을 것”이라며 조만간 펜스 높이를 약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최상의 건강수준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4조는 아이들의 건강권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당사국은 아동이 최상의 건강수준을 유지할 권리와 질병치료 및 건강회복을 위한 시설을 이용할 권리를 인정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하루 일과 중 한나절 이상을 보내며 자아를 형성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공간이다. 아이들에게 최상의 건강수준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면, 학교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최상의 보건상태를 유지해함이 마땅하다. 그것이 바로 어른들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