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조합을 고발한다
무단침입과 주택파손 등 세입자들에 대한 폭력과 만행 극에 달해
지난 5월 16일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진 아현뉴타운(아현3지구)에는 이미 많은 주민들이 이주를 마쳤다. 하지만 일부 세입자들은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골목길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재개발조합에게 이들 세입자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관리처분인가도 떨어졌고 이제는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개발조합은 이들을 쫓아내는 일에 현안이 되어 있다. 그들에게 힘없는 세입자들의 입장과 처지, 그리고 권리는 안중에 없다.
“법원에서 뭐 날아온 거 없어요?”
양승민 씨(44세, 가명)는 지난 2005년 6월 이곳 아현동으로 이사를 왔다. 계약할 때만 해도 집주인은 재개발 같은 건 없다며 안심하고 살라고 했단다. 그런데 지금 양승민 씨는 주거이전비도 한 푼 받지 못하고 집을 비워야 한다. 양승민 씨는 누가 묵은 살림 싸들고 재개발 지역에 이사 오겠냐며 집주인의 거짓말에 분통을 터트렸다.
얼마 전부터는 빨리 이사 가라는 조합 측의 협박과 회유도 심해졌다. 조합에서는 법원에서 뭐 날아온 거 없냐며 윽박지르다가, 이달 말까지 이사 가기로 각서만 쓰면 이사비용으로 300만원을 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재개발조합이 명도소송을 건 것이 분명하다. 명도소송은 재개발 과정에서 점유자가 스스로 부동산을 인도해주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을 위해 집주인이나 조합이 법원에 거는 소송이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으로 우리 다섯 식구 갈 집이 어디 있겠어요. 저기 변두리 가서 살라고요? 아니 우리같이 차 없는 사람들이 시내에 살아야지, 있는 사람들이 뭐 한다고 시내에서 산대요? 안 그래요? 누구는 언덕바지에 살고 싶어 살아요? 우리도 평지에서 살 줄 알아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아무리 벼룩시장을 뒤져봐도 없는 걸요”
“엄마 빨리 와. 집에 유리창이 깨졌어. 무서워”
심재철 군(11살, 가명)은 아현초등학교 4학년이다. 부모님이 모두 일을 나가 학교 마치면 언제나 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 집으로 돌멩이가 날아든 그 날도 그랬다.
하루는 학교 마치고 집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쨍그랑~!” 하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심재철 군은 너무 무서워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유리창이 깨졌으니 빨리 오라고.
어머니가 집에 와 보니 집으로 올라가는 복도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그리고 복도에는 돌멩이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심재철 군 집으로 날아든 돌멩이와 깨진 유리창
최근 조합에서는 용역을 고용해 온 동네 유리창을 깨부수고 다닌다. 그리고 빨간색 페인트로 온갖 욕설을 다 써 놓는다. 얼마 전에는 심재철 군 집 앞 유리창도 깨졌다. 심재철 군 어머니는 어떻게 사람 살고 있는 집에 돌멩이를 던져 유리창을 깰 수 있냐며 조합에 따져 물었다. 그러나 조합에서는 모르는 일이라며 빨리 이사나 가라고 도리어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심재철 군 집 입구. 조합 측에서 빨간색 페인트로 욕설을 써 놓았다.
심재철 군 집 입구 유리창. 유리 파손 하지 말라는 경고장에도 불구하고 조합에서는 또 유리창을 깼다.
“집주인은 강남에 살고 있는데, 당신은 누구야?”
고영오 씨(53세, 가명)는 2006년 11월 이곳으로 이사 와 작은 식당을 하고 있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손님이 없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점차 자리를 잡아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지기 전에는 점심시간이고 저녁시간이고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고영오 씨의 정직한 손맛 때문이었다.
“돼지고기는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해오지요, 재료도 죄다 우리 것으로 그 날, 그 날 들어오는 것만 썼어요. 그러니까 입소문이 난거죠. 덕분에 아들놈 하나랑 딸년 두 명 대학에도 보내고 그랬어요”
그런데 관리처분인가가 나고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면서부터는 점점 매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은 보증금 500만원도 다 까먹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딸 년 사고 나서 그 보상금 받아 보증금도 내고 밥그릇이며 수저며 사서 가게를 열었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안 남았어요. 그나마 그 애 대학 보내 공부시키는 걸로 위안 삼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니에요. 돈 번다고 휴학해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니까요”
고영오 씨 가게 앞에 붙은 문구. 이 문구가 없으면 영업을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없다.
조합 측에서 고영오 씨 집을 난입한 것은 지난 10월 7일이었다. 조합 관계자 열 댓 명이 몰려왔고 그 중 두 명이 집으로 난입한 것이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냐며 뭐 때문에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냐”고 묻자 “그러는 아줌마는 누구냐고, 이 집 주인은 강남에서 살고 있는데 아줌마는 누구냐”고 되묻더라는 것이다.
“밤만 되면 문신 그려진 아이들이 몽둥이 들고 딱, 딱 소리 내면서 돌아다녀요. 내가 뭐 걔네들 무서운 줄 아세요? 나는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에요. 다 잃었는데, 뭐가 무섭대요? 어휴~ 재개발인가 머시깽인가 때문에 이 모양이야......”
재개발조합도 프락치를 심는다?!
세입자 주거이전비 집단소송 모집이 한창이던 지난 12일, 사회당 마포구위원회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자신이 세입자라며, 소송하면 이길 수 있냐며 그 근거가 뭔지 궁금하니 한 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흑석뉴타운 세입자들의 주거이전비 소송 판결문을 들고 찾아가 친절하게 설명 드리고 함께 소송에 참여해 주실 것을 당부했다.
사실 느낌이 이상하긴 했다. 만나자는 장소가 커피숍인데다, 잘 차려입은 옷이며 금박핸드폰까지 수상한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날 저녁부터 발생했다. 사무실이며 개인 핸드폰이며 할 것 없이 소송을 중단하라는 조합 측의 협박 전화가 부리나케 걸려왔고, 급기야 13일에는 조합 관계자 수 십 여명이 사회당사에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관련기사 : “그들은 왜 찾아와서 주먹을 휘둘렀을까”) 그리고 그 날 밤, 경찰서에서 조합 측 관계자로 온 문제의 금박핸드폰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러자 금박핸드폰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급히 경찰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현동은 ‘무법지대’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하고(헌법 제16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35조) 그래서 심지어 국가기관이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도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아현동은 어떤가. 뉴타운이라는 공익사업의 보호막 아래 재개발조합은 온갖 폭력과 만행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서울시가 떠들고 다니는 ‘인간중심 커뮤니티 뉴타운’의 본 모습이다.
서울시 뉴타운 홈페이지. http://www.seoul.go.kr/2004brief/newtown_new/new_2006/sub01_01.html
11월 28일 아현뉴타운 세입자 주거이전비 집단소송 설명회 개최
아현뉴타운 세입자 주거이전비 집단소송은 오는 11월 30일까지 기간을 연장해 신청을 받는다.(관련기사 : "전기·가스·물 끊으니 그렇게 아세요") 보다 많은 세입자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11월 28일 저녁 7시 30분 사회당 당사에서 세입자 설명회를 개최한다. 부디 이날 조합 측에서 다시 한 번 사회당사에 난입해 주길 바란다. 세입자들의 분노와 힘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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