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1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사는 초등학생 9명과 중학생 4명이 마포어린이센터 공룡발톱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염리동원정대'라고 정했다. 프로도와 간달프는 암흑군주 사우론에 맞서 가운데땅을 구하기 위해 반지원정대를 꾸렸다는데,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대체 왜 '염리동원정대'를 결성한 걸까.
뉴타운 재개발 예정지, 염리동
소금장수들이 많이 살아 염리(鹽里)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마을은 면적 0.43㎢, 인구 18,000명으로 마포구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간 후 그 자리에 빈 터가 생겼다는 쌍룡대의 전설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살며 마을을 이뤄왔다.
그 오랜 세월동안 큰 변화 없이 무던히 살아온 이곳이 지금은 눈뜨면 소문부터 변하는 마을이 되었다. 어디가 어떻게 된다더라, 누구는 이사를 간다더라, 또 누구는 보상금을 바라고 이사를 왔다더라.
이게 다 재개발때문이다. 염리동은 아현동과 함께 아현뉴타운 지구에 속해있다. 이웃 마을인 아현동은 벌써 철거가 끝났고, 이곳 염리동엔 이제 재개발 조합이 들어서고 있다.
'염리동원정대' 임무는 우리 마을 지도그리기
'염리동원정대'의 임무는 '우리 마을 지도그리기'이다. 몇 년 후 재개발로 없어질 염리동의 오늘을 아이들의 시각으로 그려서 보존하자는 것이다.
'염리동원정대'는 먼저 마을 구석구석 누비며 사진을 찍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개바우, 아소정 등 마을의 역사가 담긴 곳을 비롯해 떡댕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 등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렌즈에 담아 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염리동을 지켜온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재개발로 버려진 물건을 줍기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고물상 아저씨, 10년이 훨씬 넘은 정부미 가격이 쓰인 벽보가 아직까지 붙어있는 쌀가게 아주머니, 68년 염리시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소금을 팔아 온 소금가게 할아버지까지.
물론 아이들은 이분들의 억척스런 삶의 이야기들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분들이야말로 앞으로도 계속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란 사실만은 어렴풋히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염리동 최고의 순간
5월 9일, 염리동 마을축제 '마을, 사람과 통하다'가 열렸다. 그리고 바로 이 날 '염리동원정대'는 자신들의 임무를 마쳤다. '염리동원정대' 는 한 달동안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마을의 모습을 커다란 캔버스에 담아냈다.
'염리동원정대'에 참여한 정민(용강초 5학년)이는 “이 지도 완성시키느라 마지막에 이틀동안 밤 9시까지 집에도 못가고 공룡발톱에서 저녁 해 먹으면서 그림 그린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재개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재개발요? 그거 다 때려 부수고 다시 짓는 거요. 짜증나요. 내가 다니는 곳이 다 없어지잖아요”
재개발을 떠벌리고 다니는 자들은 무조건 다 부수고 새로 짓기만 하면 더 좋은 마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마을은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가 쌓인 역사 없이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 그래서 염리동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마을이다. '염리동원정대'가 그린 지도가 염리동 최고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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