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법이라는 게 있다니……. 임금체불도, 보너스도 법이 다 해결해주고 현장에서 폭력도 못 하게 되어 있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언니와 노동조합에 관한 얘기로 밤을 밝혔다.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존칭을 쓰며, 식사 시간에도 지위를 막론하고 줄을 서고, 야근도 원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등의 이야기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것이 모두 노동조합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면 앞장을 서서라도 만들어야 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는 80년대 여성노동운동가 8명의 이야기다. 그 중 두 번째 이야기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에 참가한 윤혜련 동지가 주인공이다.
노동조합이 일반화되지 못한 그 시절 윤혜련 동지에게 노동조합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가슴 뭉클했던 희망이었다. 그녀를 비롯한 구로지역의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조합 건설에 앞장섰고, 그 결과 1984년 6월 가리봉전자 노동조합을 비롯해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효성물산 노동조합 등이 속속 건설되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라는 희망은 시련과 아픔의 다른 이름이었다.
1985년 6월 22일, 대우어패럴 김준용 위원장과 강명자 사무장, 추재숙 여성부장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해 불법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였다. 다음날 대우어패럴 노조, 효성물산 노조, 가리봉전자 노조, 선일섬유 노조의 핵심 간부들이 모여 대책 협의에 들어갔다. 이들은 군부정권이 구로지역의 모든 노동조합 운동을 분쇄시키려 한다며 동맹파업을 결의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을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6월 29일,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긴 상태에서 굶주리며 버티던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이 작업장 벽을 뚫고 진입한 관리자와 구사대들에 의해 강제해산당하면서 막을 내렸다.
2008년 기룡전자 파업
20008년 8월 21일, 파업투쟁 1094일, 단식농성 72일을 맞고 있는 기룡전자 파업투쟁에 참가했다. 3년 전 법적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만 1850원으로 입사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200여 명의 기룡전자 노동자들.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사회가 정말 나아지긴 한 걸까.
기룡전자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정문 왼편 수위실 위로 조그만 천막이 본사를 마주보고 있다. 김소연 분회장과 조합원들이 단식농성을 벌인 곳이다. 그들은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쫓겨난 일터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KTX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집회 도중 한 노동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투쟁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승리 할 때까지 투쟁하기 때문이라고. 맞는 말이긴 한데, 참 슬프다. 20여 년 전 투쟁이 현재 진행형이고, 오늘의 투쟁이 언제 끝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도 이 투쟁이 끝나는 날에 우리는 승리하겠지.
얼마 전 지리산 순례에서 들었던 녹색대학 허병섭 샘의 씨앗운동 이야기가 떠올랐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스스로 부패해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는. 그래야 그 미생물을 거름삼아 싹을 틔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기룡전자 노동자들이 바로 씨앗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역사가 그랬듯이 우리 사회는 이들의 투쟁을 먹고 자란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이들이 싹을 틔울 수 있게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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