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마포에 일군 ‘실천 인문학’ 꽃밭
지역내 6개 지식인단체 연대 ‘마실네’ 출범
‘지(智)와 행(行), 그 사이의 문화와 철학과 진보를 풀로 엮은 정원.’
지난 24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북카페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옥상에 이런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 문구는 마포 지역에 위치한 지식활동가, 연구자들의 공동체인 ‘지행 네트워크’ ‘문지문화원 사이’ ‘철학 아카데미’ ‘진보 2.0’ ‘풀로 엮은 집’ ‘다중지성의 정원’을 한 문구로 묶은 것이다. 이들 단체는 각자 마포에 사무실을 두고 철학, 문학·예술, 생태·환경, 지역자치 등의 영역에서 대중강좌, 지역 현안 개입 등을 통해 학문 연구를 현실에 접목해온 모임들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지난 24일 오후 열린 ‘마포 실천 인문 네트워크’ 출범식에 참여한 이명원 지행 네트워크 연구활동가,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구갑우 진보 2.0 편집주간, 이정우 철학 아카데미 공동대표, 이윤호 풀로엮은 집 대표,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상임강사,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왼쪽부터).
이 행사는 여섯 개 단체가 ‘마포’(지역)와 ‘실천 인문학’(관심사)이라는 공통 분모에 바탕해 ‘마포 실천 인문 네트워크’(마실네)라는 연대체를 출범시키는 자리였다. 각 단체에서 온 50여명의 지식활동가들로 옥상 카페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상임강사, 하승우 지행 네트워크 연구활동가, 구갑우 진보 2.0 편집주간,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정윤수 ‘풀로 엮은 집’ 사무국장 등이 각자의 단체를 소개하며 연대를 약속하는 발언을 했다.
사회를 맡은 이정우 대표는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소’는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의미있는 얘기들이 만들어집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포라는 지역에는 기본적인 관심사와 지향을 공유하는 각종 연구소와 활동단체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학술·사상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사회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면서 개별적으로 이뤄져 왔던 우리들의 활동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면 합니다.”
마포는 대학이 밀집한 곳이지만, 이날 참가한 단체들처럼 ‘인문학 위기’의 대안을 대학 밖에서 모색해온 모임이 어느 지역 못잖게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인문학 출판사들과 문화적 실험공간들이 어느 지역보다 많은 곳 또한 마포다.
마실네는 ‘민중의 집’과 ‘희망청’ 등 시민단체들과의 결합으로 실천성이 강화될 것 같다.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공동대표로 6월 중 문을 열 예정인 ‘민중의 집’은 지역 노동조합을 위한 교육문화센터의 성격으로 마포가 1호점이다. 청년실업 극복을 위해 20대 청년들이 직접 대안을 마련하는 운동을 조직 중인 희망청(대표 박광철) 역시 마포 동교동에 위치한 ‘재단법인 실업극복국민재단 함께 일하는 사회’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 ‘환경정의’ ‘여성민우회’ ‘녹색교통’ 등이 오는 9월 함께 마포 성산동에 ‘시민공간 나루’라는 건물을 지어 이전해올 예정이다.
지행 네트워크의 이명원 연구활동가는 “‘마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인문학이 근거해야 할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며 “마포 이외의 서울과 전국의 지역에서도 우리 모임과 함께 활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개인들의 참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실네의 활동은 크게 ‘학술활동’과 ‘실천연대활동’으로 나눠진다. 학술활동은 이들의 본업인 연구와 대중강좌, 잡지 발간이 주가 된다. 실천연대활동 역시 이들이 가진 장기인 ‘인문학’과 ‘책’을 매개로 이뤄진다. 매년 10월 ‘인문학 축제’와 ‘북 페스티벌’을 열 예정이며, 지역 또는 전국의 지식운동과 연대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마포 지역에 인문학 전문 도서관을 만들거나 사라져가는 서점들간의 망을 만들고, 마포구의 문화정책을 모니터링해 문제 제기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7월 중 나올 예정인 ‘진보 2.0’ 잡지는 마실네의 공동 연구 역량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주간을 맡을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총선으로 ‘진보의 위기’가 극명히 드러났다. 결국 이념과 주체의 위기로 정리되는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상상하기 위해 서구사상이 아니라 우리 사상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반대하는 운동이 어떻게 긍정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차이’ 속에서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잡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적·물적 자원이 빈약해 어려움을 겪어왔던 대안 인문학 운동이 이제 강의공간의 공유와 공동기획 등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들 연구자, 활동가들의 실천이 평범한 지역민들 사이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점이 관건으로 보인다.
<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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