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21/마포뉴스2008. 5. 26. 16:16

[조선일보]'골목의 성지' 아현동 '역사'로 담는다
정지섭 기자 xanadu@chosun.com

뉴타운 개발로 '옛정취' 사라질 운명
민속박물관, 생활상 등 기록화 작업

서울 마포구 아현동은 사실 내세울 것 없는 동네였다. 언덕배기를 따라 줄줄이 늘어선 집들과 왁자지껄한 골목시장, 지하철역과 동네 어귀를 구석구석 이어주는 마을버스… 이런 평범한 동네가 갑자기 젊은 사람들 사이에 뜬 것은 3~4년 전부터였다. 서울에서 옛날 분위기 나는 골목 풍경이 가장 잘 보존돼있는 동네라는 사실이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는 동시에 대대적인 뉴타운 개발 계획이 빠르게 전파되면서부터였다. 주말이면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골목 구석구석을 서성이던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 동네에 지난주 '아현3구역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졌다. 재개발 공사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가가 내려진 것이다. 동네가 낙후됐다며 개발을 원하던 이들에게는 희소식이었지만, 사람 냄새 나던 골목과 오래된 집들을 조용히 품어오던 이 동네의 옛 모습은 사라지게 된다.

◆뉴타운개발로 사라지는 '골목의 성지'

아현뉴타운의 8개 사업지역중 하나인 '아현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은 신촌로와 마포로에 둘러싸인 아현동 언덕배기 동네중 20만7527㎡ 부지(아현동 635번지 일대)를 완전히 갈아엎은 뒤 3063가구의 아파트와 도로, 공원, 공공시설 등을 들이는 사업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23일 아현동 골목 어귀 곳곳에는 구청의 3구역 관리처분인가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그 현수막을 빼면 아현동 동네 풍경은 여느 때처럼 한가로웠다. 서울에서 가장 유서깊은 목욕탕으로 알려진 '행화탕'과 옆에 나란히 자리한 한옥집 '관서피아노학원'에는 빨간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인근 '양곡직매장' 간판은 20년은 넘어 보일 법한 빛 바랜 글자체를 간직하고 있었고, 건너편 '이삿짐센터'는 아예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붓글씨로 단정하게 써놓았다.

아현동은 지하철(2호선 아현·5호선 애오개)과 접해있는 대로변을 제외하곤 동네의 대부분이 크고 작은 언덕으로 구성돼있다. 염리동과 경계를 이루는 마을버스(4번) 종점인 '넓은 마당'으로 올라가려면 몇 번씩 계단과 마주해야 한다. 계단과 계단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의 양 옆으로는 사람 한 명 겨우 걸어다닐 너비의 작은 골목들이 수없이 뻗어있다.

서울 도심에선 웬만해서 찾을 수 없는 '동네 이발소'들이 성업중이고, 찾기 힘든 풍경이 돼버린 동네 의상실과 골목 양복점도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골목길 다섯개가 만난다고 해서 자연스레 '오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오거리수퍼' 앞.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는 평상 앞에서는 할머니들이 '이별연습'이라며 막걸리에 치즈를 안주삼아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사갈 집 알아보느라고 부동산 돌아다니지만, 집값 알아보면 한숨만 나와."

"이사가는 것도 아쉽지만, 50년 넘게 한식구처럼 지내다 뿔뿔이 흩어질 생각을 하니…"

4번 마을버스 종점인 언덕배기 꼭대기의 '넓은마당'에 도착하니 아까시나무 꽃 냄새가 향긋하게 코를 찔렀다. 부근에 사는 유병학(83) 할아버지는 "언덕이 많아 오르기가 힘들었지, 범죄도 없고 정이 넘쳤던 곳이 아현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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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아현동은 서울에서 오래된 골목들을 가장 온전히 간직한 곳으로 꼽힌다. 동네 슈퍼 간판과 이발소 표시 등이 정겨운 언덕 풍경(위)과 문을 닫은 뒤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비디오 대여점. /정지섭 기자 xanadu@chosun.com



◆아현동 서민들의 생활사

이 동네, 아현동의 가치는 나라에서도 인정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도시민속 조사사업'이 서울에서 가장 먼저 진행된 곳이 바로 아현동이다.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특정한 동네에 기록자들이 1년 이상 머물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상과 역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작업이다. 현재 대부분의 작업이 끝나 6월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보고서에는 아현동의 모든 것이 담기게 된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민속'이라는 이름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을 우리 세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한옥처마와 툇마루 등 옛날 구조가 고스란히 갖춰진 집에 사는 김복순씨의 가족사를 통해서는 가족·주민·주거생활을 들여다보게 된다. 김씨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남편(김종호)이 남긴 군 복무시절 사진과 군 시절 비망록, 또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 출연 당시 녹음 테이프 등 소중한 생활사 자료들을 박물관측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현동 653~656 번지 이웃들의 모임인 '선린 친목회'를 통해 바라본 이웃간 교류, 625번지 골목의 여성 전용 '감골 경로당' 풍경으로 기록한 동네 할머니들의 여가 활용, '말끔이 봉사단'의 동네 청소 활동, 주민들의 명절맞이, 중앙여고 학생을 통해 들여다 본 의생활… 주민들의 땀 밴 일상생활 모습을 통해 아현동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깨알같이 기록했다. 민속박물관은 아현동에 이어 성북구 정릉동에서도 도시민속 조사를 진행중이다.

아현동 민속기록을 총괄한 국립민속박물관 이건욱 학예연구사는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정확하게 기록해 우리 현대사가 더 생생하고 올바로 쓰여지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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