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리동 어린이들, 박종철을 만나다
공룡발톱 친구들과 남영동 대공분실에 다녀왔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곳이다. 그곳에서 박종철 열사가 잡혀간 그대로 원형계단을 올랐고, 고문을 받았던 509호 조사실에서 헌화도 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두 눈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박종철 열사를 만났다.
박종철 열사 아버님을 뵙고 그 어느 때보다 공손한 인사를 드렸던 아이들. 참 대견하다. 오늘 박종철 열사와의 만남이 아이들에게 값진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프로메테우스] 염리동 어린이들, 박종철을 만나다
- 마포구 어린이센터 ‘공룡발톱’, 박종철인권장학금 수여
11일,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23주기를 맞아 옛 경찰청 남영동 공안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의 회장인 안승길신부와 고인의 아버지 박정기 씨, 서울대 동문들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고인이 1987년 당시 걸어올라갔던 좁은 원형계단을 따라 509호 조사실로 이동, 세면대 위에 놓인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를 했다.
이날 참가자 중에 가장 눈에 띈 사람들은 건물 앞에서 눈싸움을 하던 어린이들이었다. 이들은 마포구 염리동의 어린이센터 ‘공룡발톱’의 학생들로, 올해 박종철인권장학회가 공룡발톱을 장학금 수여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장학금 수여식에 참가하기 위해 방문했다. 어린이들은 영정 앞에 헌화한 후 4층의 박종철기념관으로 이동해 고인의 편지와 사진, 유품 등을 관람했다. 기념관에서 어린이들에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설명하던 박종철인권장학회 오준호 사무국장은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일이냐”는 어린이들의 질문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기념관을 관람한 후, 7층의 교육관으로 이동해 본행사를 가졌다. 용산참사 피해자들의 장례식이 있은 다음날이라서인지, 이날은 유독 용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안승길 신부는 용산에서의 천막농성을 되돌아보며, “물질주의가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을 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역사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희생이 이면에 존재합니다. 이 희생을 필연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 희생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찾아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23년 전 장렬하게 생명을 바친 열사의 의미가 민족사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추모사가 끝난 후 스크린을 통해 용산참사를 되돌아보는 영상이 상영됐고, 이후 장학금수여식이 시작됐다. 수여식의 사회를 맡은 오준호 사무국장은 “올해는 좀 특이하게도 지역에서 풀뿌리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센터이 수여대상으로 선정했다”며 수여대상인 공룡발톱을 소개했다.
“이들이 이 사업의 의미를 아직은 잘 모르더라도, 조금씩 박종철 열사에 대해 알아가고 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이해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학금을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공룡발톱을 대표해 수여증을 받은 조영권 공룡발톱 교장은, “공룡발톱은 마포구의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놀이터 같은 곳”이라고 소개한 후, “연말연시에 연예인들 상받는 거 보면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주신 것 같다”는 말 자주 나오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지금까지 정부지원 없이 개인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어 왔는데, 오늘 받는 장학금은 정말 의미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와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진짜 산교육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행사가 끝난 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씨는 “아직 어린아이들인데 뭐 해줄 말이 있겠냐”면서도, “(박종철이 다녔던)학교에도 가보고, 이것저것 배워보고 하면서 (의미를)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