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지역어린이 센터 공룡발톱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생명 평화 교실’ “안녕, 지구야”를 연다. “안녕 지구야”의 상설 전시 프로그램인 어린이 평화책 전시회가 시작되는 날이자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유명한 작가 김중미 씨의 강연이 있는 7월 23일, 공룡발톱을 방문해 가난과 평화의 고리를 찾아 보았다.
2009 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 “너는 행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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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의 청소년 평화책들. 아래의 서랍에는 다양한 소품이 들어 있다. 책꽂이 뒤, 창문 앞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동화책의 원화들.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는 2006년부터 매년 ‘어린이 평화책’을 선정해 전시회를 열어 오고 있다. 2009년 어린이 평화책 전시회에는 어린이용 100종, 청소년용 50종 총 150종의 책이 선정되었다. 어린이 평화책 전시회는 전국을 순회하며 열리는데, 올해는 5월 24일 제주 한라 수목원 전시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전국의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도서관 등 41개소를 순회한다. 자세한 정보는
http://peacemuseum.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화라고 해서 전쟁에 반대되는 내용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평화책 전시회는 전쟁을 비롯해 환경, 성차별, 인종차별, 왕따, 장애인 문제 등 생활 속에서 만나는 폭넓은 평화의 이야기를 다룬다. 또한 그저 책만 전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150권의 책이 빼곡히 꽂힌 책꽂이의 아래에는 서른 여섯개의 서랍이 마련되어 있다. 서랍 하나하나마다 책의 소재가 된 사물들이 들어 있다.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책을 읽으면서는 점자 체험을 해 볼 수 있고, 가자 지구를 다룬 책이나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책을 읽을 때는 세계 지도를 꺼내 분쟁 지역을 찾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식이다.
“오만 년의 역사를 가진 호주 원주민 오스틀로이드 부족은 현대 문명인을 가리켜 무탄트라고 부릅니다. 무탄트, 우리 말로 풀자면 돌연변이. ‘기본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대체 우리가 잃어버린 본래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해를 거듭하며 책꽂이를 빼곡히 채운 평화책에 어쩌면 그 실마리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픈 과거와 부끄러운 지금과 두려운 미래를 담아낸 이야기들 속에 평화로 가는 길을 알아낼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2009 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 자료집)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합니다”, 지역 어린이센터 공룡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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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발톱을 찾은 아이와 놀아 주고 있는 공룡발톱 조영권 교장.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지역 어린이센터인 “공룡발톱”에서 어린이 평화책 전시회를 만났다. 공룡발톱에서의 전시회는 DIY 친환경 티셔츠 만들기, 친환경 나무 액세서리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진행되는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생명 평화 교실”의 일환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합니다”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는 공룡발톱은 원래 12명의 저소득층·편부모가정 아이들이 다니는 무상 공부방이지만, 방학 동안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개 강좌를 진행한다. 안전한 먹거리를 다룬 ‘초록 밥상’ 강연회에 이은 생명평화교실은 지역 주민이 함께 하는 강연회를 통해 마을 공동체 복원을 꿈꾸는 공룡발톱의 노력이다.
공룡발톱 조영권 교장은 “요즘 아이들이 보이는 폭력적 성향이 사회 전반에 걸친 빈곤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생명·평화 감수성을 전해 주고 싶은 마음에 생명평화교실을 기획했다”고 기획 배경을 밝힌다. 조영권 교장은 “평화라고 하면 가정이나 아이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지역 주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룡발톱의 문이 열려 있는 오후 시간대에는 누구나 찾아가 어린이 평화책들을 읽어 볼 수 있다. 또한 25일 DIY 친환경 티셔츠 만들기, 28일 친환경 나무 액세서리 만들기, 29일 빛그림 동화상영 프로그램(모두 오후 2시) 역시 사전 예약을 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참가 문의는 공룡발톱 조영권 교장(010-2385-6510, redpure75@hanmail.net)에게 하면 된다.
“가난하다는 것은 내 안에 남을 들일 수 있는 빈 자리가 생기는 것”, 작가 김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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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발톱에서 강연 중인 작가 김중미 씨.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
느낌표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세를 탄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저자이자 2009 어린이 평화책 선정위원인 동화작가 김중미 씨가 공룡발톱에서의 어린이 평화책 전시회를 여는 강연을 맡았다. 김중미 씨는 인천의 빈촌인 만석동에서 87년부터 공부방 교사로 활동해 오고 있다. 공부방에서는 ‘큰이모’라고만 불려 작가인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지만, 데뷔 10년차 작가인 그의 글은 바로 그 공부방에서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했던 목재소에서 맡았던 나무 냄새에 끌려 무작정 눌러 앉았다는 만석동은 일제 감정기에 조선인 노동자들의 숙소가 있었던 곳이며 한국전쟁 후에는 황해도·평안도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그리고 6, 70년대에는 전라도·충청도 등지에서 온 이농민들에게 터전이 되어 준 오래된 빈곤 지역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김중미 씨는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산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내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손을 내밀 수 있고, 또 남이 내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연을 듣던 한 참가자가 꼭 가난해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김중미 씨는 “나는 늘 가난했기 때문에 사실 부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도 “그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공부방 건물을 새로 지었던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바람이 불면 벽이 흔들리는 판잣집들 사이에서, 역시나 판잣집이었던 공부방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건물을 새로 짓게 된 것이 10년 쯤 전의 일이다. 최대한 튀지 않게 부러 좁고 불편하게 건물을 지었지만, 비가 새지 않고 바닥이 뜨끈한 것만으로도 전혀 다르더란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서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잠이 너무 잘 오는 거에요. 다음 날 아침에 잠을 깨면서 삶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어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지만, 겨우 집 한채 새로 지은 것 만으로도 바깥 세상과의 사이에 벽이 생기더라구요. 다른 세상에 살게 되는 거에요”하고 당시를 회상하던 김중미 씨는 말을 하면서도 몸서리를 쳤다.
“저 스스로는 가난을 선택했고 또 가난이 주는 힘을 믿지만, 구조적 가난은 사회의 책임이잖아요”라고 말하는 김중미 씨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원을 다니지 못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들에게 왕따를 피할 수 있는 처세술을 가르치는 대신 옳은 길을 택하고 옳은 말을 하는 법을 가르친단다. “초등학교 다닐 때엔 공부방 애들이 거의다 왕따를 당해요. 그런데 중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달라지더라구요. 우리 애들이 워낙 넉넉하니까, 다른 아이들이 와서 기대요. 친구들을 품을 수 있는 거죠”라는 말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가난한 교육’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스스로 가난을 선택했다는 김중미 씨가 믿는 가난의 힘은, 스스로의 속에 빈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고서도 커서는 다른 친구들을 품을 수 있게 되는 아이들도, 스스로가 가진 것이 없기에 서로 손을 내밀고 또 잡을 수 있는 어른들도 모두 그 속에 빈 자리를 품고 있다는 것. “가난하다는 것은 내 안에 남을 들일 수 있는 빈 자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김중미 씨는 말한다. 빈곤이 부른 폭력성의 고리를 풀기 위해 열린 생명평화교실, 그 첫 장에서 ‘평화를 만드는 가난’에 대한 실마리가 보였다.